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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원고] 내가 새벽에 길을 나서는 까닭은...

생각대로 끄적끄적

by WonderLand™ 2012. 10. 2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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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의 어느 날 새벽. 알람 소리에 잠이 깬 나는 발코니로 나가 밤하늘을 살펴본 후 일기예보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검푸른 하늘에 또렷하게 반짝이는 별들, 온 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차가운 밤공기, 쥐 죽은 듯 고요한 바람. ‘그래! 오늘이다.’ 카메라 가방을 챙기고 차를 몰아 길을 나섰다. 목적지인 경북청송의 주산지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다섯 시. 마음에 드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주변의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아침 일곱 시 쯤 동쪽하늘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산자락의 울긋불긋한 단풍과 저수지 위로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는 물안개가 보이고, 잔잔한 수면은 거울처럼 깨끗한 반영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는 조용히 잦아들고, ‘찰칵찰칵’ 셔터소리와 함께 가끔씩 터져 나오는 감탄사가 들릴 뿐이었다.

 

위 장면은 내가 출사여행을 떠나는 날의 전형적인 모습을 실제 있었던 그대로 묘사해 놓은 글과 그 당시에 찍었던 사진이다. 여기에는 지난 15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다녔던 내 출사여행의 특징 몇 가지가 그대로 들어있다. 그것은 바로 ‘이른 새벽’, ‘무거운 카메라가방’, ‘긴 기다림’이다. 이제부터 이 세 가지에 대해 내 경험과 생각을 하나씩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새벽이다. 내 풍경사진의 대부분은 새벽에 찍은 것들이다. 새벽에만 나타나는 몇 가지 기상현상들의 조합이 드라마틱한 장면을 보여 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대기가 청명한 날 새벽의 푸르스름한 새벽빛과 하얀 물안개가 어우러진 광경은 나를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한다. 또 어떤 날의 새벽은 동녘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아침 해가 내 가슴속에 내일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꿈틀대게 하기도 한다.

물론, 아무 날에나 이런 장관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기 중 미세먼지가 적은 쨍한 날일수록 새벽빛이 아름다워지고, 일교차가 크면서 바람은 잠잠해야 물안개가 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새벽출사를 떠날 때면 출발하기 전에 반드시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기온, 습도, 풍속, 미세먼지농도, 위성사진을 확인한 다음 기대와 다르겠다 싶으면 주저 없이 계획을 변경하곤 한다. 이렇게 고르고 골라서 가더라도 십중팔구는 기대에 못 미치는 날이 부지기수다.

 

둘째는 카메라, 렌즈, 삼각대 등등 장비들이다. 내가 취미로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비싼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사진이 더 잘 나와요?” 내 대답은 예전에는 “네” 이었고, 지금은 “아니요” 이다.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대중화되고 관련 기술이 한창 발전하고 있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새로 출시된 비싼 카메라가 구형 모델보다 화질이 좋았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이제는 관련 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함에 따라 카메라 모델별로 화질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만약 사진을 크게 인화해서 두고두고 감상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가급적 노이즈가 적게 발생하고 계조가 부드럽게 표현되는 카메라, 해상력을 비롯해 각종 광학적 성능이 좋은 렌즈, 흔들림을 확실히 잡아주는 삼각대 등등이 필요하게 된다.

 

셋째, 마지막으로 긴 기다림과 짧은 절정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말머리에 주산지를 다녀온 경험을 썼는데, 늦가을에 주산지에서 사진을 찍기 적당한 시각은 아침 일곱 시 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다섯 시 부터 기다린 까닭은, 그보다 늦게 가면 아쉽게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DSLR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조금 유명한 곳이다 싶으면 주말마다 카메라를 들고 찾아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 되었다.

이처럼 꼭두새벽부터 몇 시간씩 기다리는데 비해 실제로 사진을 찍는 시간은 채 10분 남짓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주산지의 경우, 깜깜한 동쪽하늘에 어스름 빛이 비춰질 때부터 일출을 보기 전까지 약 10분 동안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지는 소위 ‘매직아워(magic hour)’이다. 해가 떠올라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저수지 표면에 상승기류가 만들어져 물안개는 공기중으로 흩어져버리고 주산지는 그저 그런 평범한 저수지로 변해버린다. 이 짧은 순간을 사진 속에 영원히 담아두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짧게는 한 두 시간에서부터 많게는 다섯 시간 가까이 새벽길을 달려와 기다리는 것이다.

 

이상으로 내가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 느껴왔던 나 스스로의 몇 가지 특징들을 정리해 보았다. 사진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자칫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주변사람들로부터 ‘쓸데없이 고생하는 것 아니냐?’,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뭔가?’ 등등의 이야기를 들어보았고, 궁극적으로 ‘사진을 왜 찍냐?’ 라는 질문도 많이 받아보았다.

대다수 사람들의 취미생활이 그러하듯이, 내가 취미로 사진을 찍는 것도 특별한 목적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사진을 찍는 순간의 묘한 긴장감에 중독되다 보니 무거운 가방을 메고 새벽길을 나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그래도 가끔 내 사진생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면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곤 한다. 사진여행을 다니면서 자연스레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다 보면 내 생활이 보다 더 풍부해지고, 어쩌다 운 좋게 대자연의 경이로운 모습을 만나게 되면 세상을 향해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게 되며, 곳곳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접하다 보면 내 마음의 넓이가 조금은 넓어지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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